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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용설명서는 알아보기 쉽지 않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매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기획사항을 확인하고, Spec.을 정의하고, 개발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Simple, 단순화를 외치며 작업이 진행되지만 백이면 백,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오늘 작업을 진행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혹시 일부러~?”

흔히들 말하는 Spec(스펙)은 아래와 같이 복잡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혹은 복잡화과정을 생략하고 이미 복잡한 경우도 있다)

어찌보면 위의 과정은 당연하기도 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과정이다.
그런데 왜 위의 과정으로 진행하게 되면 스펙의 복잡화가 가중될까?

작가들이 글을 쓸 때를 생각해보자. (실제로 아는 작가는 없지만, 그냥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자신의 영감을 글로 쓰기 시작한다.
“아~ 이게 아니야”
노트를 찢어 뭉친다음 등뒤로 집어던진다.
이미 작가의 뒤에 널부러진 종이뭉치는 어마어마하다.

위에서 스펙을 정의한 것과 작가가 글을 쓰는 내용에서 다른 점은 무엇일까?
바로 “기존 내용의 유지”이다.
기존 스펙을 위협하는 “커다란” 몇 가지의 문제점이나 작은 “수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면
스펙은 폐기되고 원점부터 논의되어야 한다.
마치 작가가 집어던진 종이뭉치들처럼…

스펙을 정의했던 사람은 좌절이다.
이제껏 쌓아왔던 스펙을 처음부터 새로 생각해야한다니…
그 때, “if의 유혹”이 발생한다.

“그래, 이럴 때만 이렇게 하자. 이건 예외사항이야.”

그럼 이럴 때는?

점점 복잡함이 가중된다.
이렇게 스펙은 복잡화되어진다.

그렇다면 복잡해지면 어떤 장점(?)이 생기기에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까?

먼저 복잡해지면, 자신이 우월해짐을 느낀다.
이건 뭐, 많은 심리학 이론에서 나오니 딱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일례로 사람들은 자신만이 아는 단어, 축약어를 써서 상대방의 논리를 흐뜨러트리기도 한다.
“CP가 provide는 DVA컨텐츠를 CDN으로 distribute하는 이슈는 TBD이다”
(컨텐츠제공자가 문서/동영상/오디오 컨텐츠를 다운로드서버에서 제공하는 것은 미정이다)

그리고 복잡해지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발생한다.
나는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내심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갔으면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나만이 알 수 있게 복잡하게 해놓으면 그 일은 나만 할 수 있게 되고,
그 일이 굉장이 중요한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회사에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된다.
적어도 회사로부터 you fire라는 얘기는 듣지 않을테니까..

여기까지는 사실 조금은 원론적(심리학적인…)인 이야기일지 모른다.
오늘 내가 딴 생각을 하면서 생각했던, 내용이 여기부터 본론일 것 같다.
복잡해지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더라도 아무도 내 잘못인지 모른다.
또한, 설사 그 잘못을 누군가 알게되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수히 많아진다.

내가 1+1=3 이라고 썼다면 누가보더라도 틀렸다.
그리고 왜 틀렸는지를 백만가지 얘기하더라도 변명일 뿐이다.

그런데 내가 (1+1)2-1-(1+13)+2=2 라고 쓰면 한방에 틀렸다고 하기 어렵다.
(물론, 이 예제는 약간 벗어나는 예시일수도 있다)
게다가 누군가 틀렸어!라고 이야기했을 때,
“아, 1+13은 23=6이 아니라 1+3=4가 되는구나. 그래서 틀렸군”
1+1을 틀렸을 경우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 용납이 될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명확하게 얘기하고, 인정할 수 없는 딱딱한 조직 안에서의 일부 겁쟁이들에 의해서
그렇게 스펙은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우리가 받았던 보험계약서, 혹은 온갖 약정동의서들, 설명서들은…
상대방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달아날 너구리굴을 파놓은 것이다.

그 속에 담겨진 복잡성들은
어쩌면, 상대방이 알아보지 못하게 “일부러” 그렇게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덧붙: 쓰다보니 http://freeism.co.kr/tc/694 과 내용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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